-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大邱 慶尙監營 測雨臺)
- 국적/시대한국 - 조선
- 재질돌 - 화강암
- 분류전통과학 - 천문 - 기상관측 - 측우기
- 크기가로 38.7cm, 세로 37.0cm, 높이 46.0cm, 구멍지름 15.5cm
- 소장품번호기장2.
상세정보
영조 46년(1770) 대구 경상감영[영영(嶺營)] 선화당 앞뜰에 설치되었던 측우기의 받침대이다. 측우대는 측우기를 안정적으로 고정하고,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4점의 측우대[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관상감 측우대, 통영 측우대] 가운데 1점이다. 측우기는 남아 있지 않고 측우대만 전한다. 직육면체이고, 윗면 중앙에 측우기를 올려놓기 위한 둥근 홈이 파여 있다.
앞면에는 ‘측우대(測雨臺)’, 뒷면에는 ‘측우대, 건륭 경인년 5월에 만듦[測雨臺/乾隆庚寅五月造]’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다.『영조실록』의 측우대 기록‘높이 포백척(布帛尺) 1자, 너비 8치, 구멍 깊이 1치’과 일치한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경상감영에 설치되어 있다가 1910년 인천측후소, 1950년대 서울측후소, 1998년 기상청, 2020년 국립기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 과정 중에
측우기와 하단 받침대가 분실되었다. 전쟁 당시 총탄 흔적도 남아 있다. 1911년 이전 경상감영 측우기의 사진은 영국 「네이처(NATURE)」지와 영국 왕립 기상학회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대 조선총독부 관측소장을 지낸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조선의 측우기 관련 내용을 기고하면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측우기의 사진을 수록했기 때문이다. 비록 측우기와 받침대는 없지만 측우대 자체만으로도 제작 및 활용의 의의가 충분하기 때문에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 함께 국보로 승격되었다.
앞면에는 ‘측우대(測雨臺)’, 뒷면에는 ‘측우대, 건륭 경인년 5월에 만듦[測雨臺/乾隆庚寅五月造]’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다.『영조실록』의 측우대 기록‘높이 포백척(布帛尺) 1자, 너비 8치, 구멍 깊이 1치’과 일치한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경상감영에 설치되어 있다가 1910년 인천측후소, 1950년대 서울측후소, 1998년 기상청, 2020년 국립기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 과정 중에
측우기와 하단 받침대가 분실되었다. 전쟁 당시 총탄 흔적도 남아 있다. 1911년 이전 경상감영 측우기의 사진은 영국 「네이처(NATURE)」지와 영국 왕립 기상학회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대 조선총독부 관측소장을 지낸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조선의 측우기 관련 내용을 기고하면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측우기의 사진을 수록했기 때문이다. 비록 측우기와 받침대는 없지만 측우대 자체만으로도 제작 및 활용의 의의가 충분하기 때문에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 함께 국보로 승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