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公州 忠淸監營 測雨器)
  • 국적/시대한국 - 조선
  • 재질금속 - 동합금
  • 분류전통과학 - 천문 - 기상관측 - 측우기
  • 크기높이 32.1cm, 지름 14.9cm
  • 소장품번호기장1.
상세정보
헌종 3년(1837) 충청감영[금영(錦營)] 선화당 앞뜰에 설치되었던 우량 관측 기기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측우기 유일본이다. 현재 측우대는 남아 있지 않고 측우기만 전한다. 원통형이며, 3단으로 분리된다. 상분기와 중분기는 아래가 뚫려 있고, 하분기는 바닥이 막혀 있어 빗물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중분기 바깥면과 하분기 바닥면에는 각각 설치 장소, 크기, 제작 연도, 무게를 기록한 명문과 관리 담당 관원들[통인(通引). 급창(及唱), 사령(使令)]을 명시한 명문이 있다. 중분기의 명문에 적힌 측우기의 크기인 ‘높이 1자 5치, 지름 7치’는 『세종실록』 세종 24년(1442) 5월 8일자 기사에 적힌 측우기의 크기와 정확히 일치하여, 세종 대에 정해진 측우기 규격이 헌종 대까지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측우기는 세종 23년(1441) 발명된 정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듬해 세종은 측우기를 규격화한 후 측우기의 수심 측정 도구인 주척(周尺)과 함께 전국 각지의 감영에 배포하였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중단되었던 측우 제도를 영조가 복원하면서 측우기도 다시 배포되었으나, 현재는 헌종 대의 충청감영 측우기 1점만 남아 있다. 이 측우기 또한 초대 조선총독부 관측소장을 지낸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1915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가, 1971년에 환수된 것이다. 환수 직후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 국보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