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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公州 忠淸監營 測雨器)
- 국적/시대1837(헌종 3)
- 재질동합금
- 크기(높이)31.2x(지름)14.5
- 소장품번호국보
상세정보
조선시대 측우제도를 유일하게 증명하는 이 측우기는 바깥면과 바닥면에 제작연도, 설치장소, 담당직급, 크기와 무게가 음각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 측우기의 제작시기는 1837년(헌종3)이지만 측우기가 발명된 세종24년(1442) 기록에 나와 있는 크기와 동일하고, 현대적 정밀측정 조사를 통해 세종조의 척도를 따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이 측우기가 세종조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측우기는 표준화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금영(錦營)’이라는 조선시대 충청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에 설치되었으나 현재 측우대는 없고 측우기만 남아있다.
1915년 조선총독부 초대 관측소장인 와다유지(和田雄治)에 의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1년 국내로 반환된 후 기상청에서 보관하였고,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통형의 3개단으로 분리되며, 주물성형 후 바깥면을 도구로 깎은 흔적이 남아있다.
각 단의 상부는 미세하게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아 서로 끼워 맞출 수 있고, 대나무 마디처럼 도톰한 접합부는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여 기형(器形)의 변형을 방지하고 있다.
측우기의 제일 윗부분의 둥근 입구는 빗물이 튕겨나감을 막고 있는데 현재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추천하는 측우기의 세부 구조, 크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 측우기는 동합금으로 제작되었으나 자연발생 녹(파티나)가 전면에 발생하여 짙은 초록색이 되었다.
e뮤지엄 바로가기 ☞ 공주충청감영측우기를 검색해보세요!
이 측우기의 제작시기는 1837년(헌종3)이지만 측우기가 발명된 세종24년(1442) 기록에 나와 있는 크기와 동일하고, 현대적 정밀측정 조사를 통해 세종조의 척도를 따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이 측우기가 세종조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측우기는 표준화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금영(錦營)’이라는 조선시대 충청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에 설치되었으나 현재 측우대는 없고 측우기만 남아있다.
1915년 조선총독부 초대 관측소장인 와다유지(和田雄治)에 의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1년 국내로 반환된 후 기상청에서 보관하였고,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통형의 3개단으로 분리되며, 주물성형 후 바깥면을 도구로 깎은 흔적이 남아있다.
각 단의 상부는 미세하게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아 서로 끼워 맞출 수 있고, 대나무 마디처럼 도톰한 접합부는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여 기형(器形)의 변형을 방지하고 있다.
측우기의 제일 윗부분의 둥근 입구는 빗물이 튕겨나감을 막고 있는데 현재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추천하는 측우기의 세부 구조, 크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 측우기는 동합금으로 제작되었으나 자연발생 녹(파티나)가 전면에 발생하여 짙은 초록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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