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大邱 慶尙監營 測雨臺)
  • 국적/시대1770(영조 46)
  • 재질화강암
  • 크기(가로)37.8x(세로)37.3x(높이)46.4
  • 소장품번호국보 제330호
상세정보
현존하는 측우대 총 5점 중 가장 이른 시기인 영조 46년(1770)에 제작되었다.
1441년부터 시작된 강우량 측정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200여 년간 중단되었으나, 영조대에 이르러 세종대의 측우기와 측우대를 제작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할 때 제작되었다.
이 측우대 표면에는 이 돌받침의 용도가 ‘측우대’라는 점과 이 측우대의 제작연도를 보여주는 음각 글씨가 앞뒷면에 새겨져 있다. 

측우대의 크기는 영조실록에 공식화되었는데 포백척으로 1자, 너비는 8치, 돌받침 위에 둥근 구멍의 깊이는 1치로 되어있다.
이는 15세기 세종시대의 제도를 따라 측우기와 측우대 제도를 마련하였고, 기존 전례가 지속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일제강점기 기상학자 와다유지(和田雄治) 기록에 따르면 이 측우대는 경상감영의 선화당 앞뜰에 설치되어 있다가 조선총독부 기상관측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기상청에서 보관하였고,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화강암의 일종인 사암으로 제작되었다. 직육면체 형태로 상단 윗면에 측우기가 놓여지는 둥근 구멍이 가운데에 파여 있다.
측우대 표면에는 6․25동란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다.
제작시기와 크기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증명되는 이 측우대는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와 함께 귀중한 우리 과학문화 유산이다.